2007년 08월 11일
난 통쾌하다



짤은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


솔직하게 말하면, 난 이 상황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입장. 조목조목 따져가며 얘기하는 건 부족한 글재주로는 무리고, 기담까지 보고 와서는 디워가 얼마나 엉망이었나를 다시금 실감한 이후의 생각을 글로 풀자면, 비교할 수 없는 두 영화지만 잘 짜여진 플롯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주는 몰입감의 중요성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뻔한 사실을 디워가 무시하고 있다는데 있어서, 난 그 영화가 관객이 영화에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철저하게 기만한 사례라는 인상을 받았다

적어도 난 이런 영화 속에서 애국을 들먹이면 안 되는 거였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영화 속에 담긴 한국은 그야말로 우스웠다. 그가 크레딧이 올라가며 애국가가 나오는 걸 듣다가 울었든 어떻든, 디워를 본 입장에서는 공감하지 않나, 우습지 않은가. 유치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해 겸허해지기로 한 건 그 한계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해까지는 아니고 최면이자 독선으로 디워는 어디까지나 영구와 아기공룡 쭈쭈에서 그래픽 이외에는 단 하나도 진일보한 영화가 아니며 다시말해 비평이란 행위 자체가 모순이고(뽀뽀뽀에 작품성을 요구하나?) 디워란 영화의 수준을 최소한 장르 영화의 하나로 보는 건 과대 평가에 불과하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제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은 내 생각을 대변해 주었다. 한 편으로는 통쾌하고 한 편으로는 저건 좀 아닌데..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난 진중권이 영화에 삽입된 애국가는 영화사상 최고의 코미디다. 라고 말한 것도 통쾌하고

디워는 서사가 없다는 것에 공감하며

(디워가 300과 다른 게 뭐냐는 시민 논객의 질문에)

'이게 바로 비정상적인 지금의 상황을 보여준다'며 울화통 터지는 목소리로 말한 그를 이해한다.
다만 그가 직접 나와서 디워란 영화에 대해 언급한 것 자체가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는 디워를 애초부터 비평의 대상에 올릴만한 영화로 둔 적이 없었고, 그런 관점에서 비롯된 말들은 비평이라기 보다 비난에 가까운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은 분에 못이겨 자폭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거다. 그러나 통쾌한 한 방 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사족일 수도 있는데,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박진영이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인이라서 한국음악을 해야되는 것도 아니고, 한국적인게 세계적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어릴때부터 흑인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그래서 그나마 지금 미국에서 곡을 팔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적인 걸 좀 섞어야 하지 않나, 라는 강박도 없지 않아서 한 번은 힙합과 사물놀이를 섞어봤는데, 안 어울려요. 이상해.

내 생각에 박진영은 현명했지만 심형래는 그렇지 못하다. 디워에서 볼 수 있는 그 부적절한 조화는 그의 숭고한 애국심으로 만회할 만한요소가 아니며, 이는 곧 디워가 흥행 영화로서는 치명적인 악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흥행을 하고 있다는 건 심형래란 개인의 인간 극장에서 비롯된 동조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진중권이 심형래 감독은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말을 했는데, 사실 그런 거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과가 나온 이후의 일이지만 디워를 통해 헐리우드가 생각하는 한국 영화의 이미지가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더 솔직해 지자면  디워 속의 한국에 대해 신경쓰는 관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고 또한 여기서처럼 담론이 조성될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렇게 소리없이 묻혀버리는 것. 난 그게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by 라뤼 | 2007/08/11 04:11 | 일상잡담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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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08/11 05: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빌게이츠 at 2007/08/11 09:38
영화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진중권은 시원하다 못해 통쾌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진중권은 싫은데 그의 말은 틀린 말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으니, 이젠 진중권을 '스포일러'라고 욕합니다.

정말 말하기 무섭습니다. 그래서 '꼭지가 돕니다.'

공감하는 의미에서 트랙백 하나 걸겠습니다.^^
Commented by 슈3花 at 2007/08/11 16:41
궁금해요. 디워도. 100분토론도.
Commented by 돼지콜레라 at 2007/08/11 19:32
정말 통쾌하게 한방 날려주더군요.
Commented by Heliotrope at 2007/08/12 00:10
저도 진중권 얘기를 들으면서 통쾌함에 바닥을 굴렀지만

백분토론에 출연한 것 자체가 실수라는건 정말 공감입니다
Commented by 라뤼 at 2007/08/12 00:22
비공개/
DVD 판에 삽입될 촬영 후기는 분명 영화보다 훨씬 재밌을 거예요.

빌게이츠/
예상했던 일이죠.

슈3花/
확실한 건 100분 토론이 더 재밌어요.

돼지콜레라/
통쾌했죠. 물론 그로인한 피드백 효과는 당연히 없겠지만.

Heliotrope/
토론 자체는 지루했는데, 진중권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보는 내내 시원했죠.
Commented by 자바 at 2007/09/11 01:50
백분 토론은 못 봤지만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디워
"잘 짜여진 플롯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주는 몰입감의 중요성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뻔한 사실을 디워가 무시하고 있다는데 있어서, 난 그 영화가 관객이 영화에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철저하게 기만한 사례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 마디로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ㅡ.ㅡb
Commented by 2steps at 2008/01/09 19:58
심형래씨는 탁월한 감독이라기 보다는 탁월한 홍보맨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심형래라는 인각극장에의 동조. 그 말이 핵심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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