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01일
박쥐를 보고 왔습니다 -2-



박쥐를 보고 왔습니다 -1-

앞의 것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영화 박쥐의 가장 큰 미덕은 자연스러움에 있습니다.

박쥐를 보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뱀파이어 + 고부갈등 + 엄마 젖 땔 시기를 놓친 남편과의 고달픈 결혼생활 +  뱀파이어가 된 신부와 태주의 뜨거운 사랑 + 부산 전포동의 골목길 풍경 + 마작, 한복집 + OST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와 이난영의 선창에 울러왔다 + 욕망 앞에 선 신앙, 윤리, 도덕의 덧없음

이런 배경과 이런 이야기를 버무려 보면 무슨 그림이 나올까요. 범부의 상상으로는 밑그림조차 그리기 힘든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죠. 모든 게 아이러니고 따라서 이 이야기들을 박쥐라는 영화에 담아내고자 했다면 관객 입장에서는 예술이나 전위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장르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 대단히 폭력적인 서사를 취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어느 한 부분 튐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있을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있을 법한 것으로 바꿔 놓는 건 유능한 영화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에게 요구되는 능력이죠. 그런 면에서 박찬욱이란 인물은 JSA 이후로 늘 유능해 왔지 않습니까. 그는 항상 대중영화란 틀 안에서 영화를 만들어 왔으니까요. 컬트로 치우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음에도 중박을 보장하는 네임벨류는 바로 그런 기조 안에서 만들어져 왔다고 봅니다.

그 성향이 반영된 덕분인지, 박쥐는 서사적인 면에서 친절한 편입니다. 물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인물의 행위에 기본적인 당위성이 부여되어 있다는 겁니다. 원초적인 욕망, 그것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식욕 성욕 자유욕 파괴욕 뭐 아무튼 이런 욕들에 대한 것이죠(고자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창작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개개인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데, 박쥐는 그 욕망의 가장 원초적이며 무엇보다 강렬한 속성을 들춰냅니다. 상현이나 태주나 둘 다 배가 고프다면 당연히 밥을 먹어야죠. 문제시 되는 건 그 밥이 피라는 건데... 피를 먹는다는 행위는 충분히 괴기스러운 일이지만 영화 속에서 그 피는 락엔락에 담아 보관하면 수시로 꺼내 먹을 수 있는 그들의 밥으로 화합니다. 괴기한 욕망의 갈구가 일상적인 풍경 속으로 녹아드는 순간이죠. 영화는 그렇게 뱀파이어라는 특정한 종족에게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일상을 요구합니다. 이는 뱀파이어가 절벽의 성에 살면서 수시로 마을에서 사람들을 사냥해 와 피를 빤다는 기존의 이미지를 압도하는 강렬한 낯설음으로 다가오죠. 하지만 그런 낯설음에 우리는 당황하지도 의구심을 가지지도 않습니다. 그건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는 우리의 일상과 다를 것 없으니 이해 못할 이유가 없죠. 뱀파이어 부부 태주와 상현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강렬하게 이끌려 사랑하게 되고 질리게 됩니다. 부부싸움도 하고 신세한탄도 하면서 난리법석을 떠는데요, 이 또한 익숙한 모습들이죠.

그런데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커플임에도 왜 그들의 식탁은 이렇게도 쓸쓸한 모습이며 그 사랑은 더 애달픈 걸까요.

예...... 그들은 인간의 피를 먹는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한 두 장으로 안 끝나네요.



by Dozma | 2009/05/01 20:41 | 영상물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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